화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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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온 곳

화석정

by 하누아 2020. 9. 9.

자유로 타고 가다 문산, 적성 방면으로 우회전을 한 후 5분 정도 지나면 임진강 벼랑 위에 자리 잡은 정자가 하나 있다.

바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 화석정이다.

입장료도 없고 주차료도 없으므로 누구나 잠시 들려서 유유자적 즐기면 된다.

 

 

임진강가에 세워진 정자로 화석정이 자리잡은 파주시 파평면 율곡 3리는 조선 중기의 학자였던 율곡 이이가 살았던 곳이다. 

세종 25년(1443년) 율곡의 5대 조인 이명신이 정자를 건립하였는데 성종 9년(1478년)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이 중수하고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1592년 왜의 침입을 받은 조선군은 맥없이 패해 불과 20일만에 수도 한양을 적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선조는 평양을 거쳐 6월엔 국토의 서북단인 의주까지 몽진해야 했다.

선조는 무악재에 올라 성난 군중들에 의해 불길에 휩싸인 경복궁을 바라보며 처참한 심정으로 관서대로를 따라 북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선조의 파천 일행이 벽제관에서 황급히 점심을 먹고 임진강에 도달한 것은 4월30일 저녁, 이날 하루 종일 큰비가 내린 데다 그믐밤이 칠흑같이 어두워 강을 건너기가 어려웠다.

모두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이때 절벽 위에서 환한 불길이 올랐다.

이 틈에 배에 오른 왕과 일행은 간신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선조실록과 유성룡의 징비록에 따르면 임진강 남쪽 기슭에 인가가 있어 그 재목을 적병이 뗏목으로 이용할 것을 염려해 불을 놓고 그 불빛이 강북을 비춰 길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불빛은 임진나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화석정이 불타면서 비쳐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 이이는 임종하면서 유언을 했는데 화석정 곳곳에 기름칠을 잘해 두었다가 모년 모월 모일에 불을 지르라고, 그날이 바로 선조가 도강한 날로, 이이는 선조의 몽진을 이미 8년 전에 예언을 했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80여 년간 터만 남아있다가 현종 14년(1673년)에 후손들이 복원하였으나 6.25 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1966년에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하였는데 건축양식은 팔자지붕 겹처마에 초익공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고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

 

수령 500년된 느티나무에서 찰칵~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달랑 정자 하나 있지만 오가는 길손들의 쉼터가 되기엔 충분하다.

수백 년 생 향나무를 비롯해서 560년 된 느티나무가 긴 세월을 대변해 주고 있다.

 

 

화석정에서 임진강을 내려다보니 그림같은 모습에 저절로 힐링이 된다. 

정자에서 내려와 시골길을 걸으며 가족과 담소를 나누고 풍경을 한참 더 본 후 차로 돌아왔다.

글을 쓰면서 율곡 이이에 대해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니 더욱 유익하다.

율곡의 묘는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묘와 함께 자운서원 내에 위치해 있고 황희 선생의 '반구정' 과는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어 멀리서 오신 분들은 함께 들려도 좋을 것 같다.

반구정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은 상태이니 확인하고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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